우선 남이 앉아야 할 자리에 대신 앉은 염치 없는 기분이 듭니다만 수험생 여러분께 인사드립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고시 합격의 목표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고 계신 수험생 각자의 그 의지와 분투에 경의와 공감을 느낍니다. 만에 하나 제 이야기가 수험생들에게 마음의 짐을 덜어주지는 못할망정 짐을 얹을까봐 곤혹스럽기 짝이 없지만 너그럽게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1. 고시에 응시하기까지
저는 1964년 제주도에서 태어났고 1982년에 제주 제일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집안은 귤농사를 짓는 넉넉지 못한 살림이었고, 부모님께서는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서울에 와 대학에 입학한 후 학생운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여 학교에서 유기정학을 받았었고, 그 이후에는 구로 공단에서 야학활동을 하고 인천공단에서 공장생활을 했었습니다. 학교는 소홀히 했고 경찰의 주시를 받는 가운데 과외교사와 번역으로 생활비를 벌면서 거의 최저수준의 생활을 하고 몇 년간을 운동에 열중했습니다.
휴학을 반복하고 학점이 모자라 입학 한 지 8년 만인 89년에 어렵게 졸업했습니다. 89년경부터 운동이 직면한 문제들에 대해 고민이 깊어지다가 90년에 들어서 개인의 진로를 고심하게 되어 사회에서 구체적이고 안정된 위치를 가지고, 그중에서 경력을 덜 문제 삼는 사법시험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2. 수험생활
운동을 하다가 관계를 정리하고 고시 준비를 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미안한 마음으로 고시공부 기간 내내 마음고생이 심했었습니다. 그러나 생활만큼은 운동하던 당시보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지려고 했습니다.
처음 고시공부를 시작했을 때 먼저 고시공부하고 있던 친구들과 후배들의 조언과 격려에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시작이 늦은 만큼 남들보다 더 공부해야한다는 부담감도 많았지만 최대의 노력과 집중력을 기울여야한다는 각오와 의지가 강했습니다.
거처를 학교 근처로 옮기고 학교 도서관에 아침 7시에 나가 밤 11시까지 공부에 집중했습니다. 생활은 최대한 단순화시키고 집중상태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했습니다. 조그만 생활일지 노트를 마련해서 그날 공부한 시간을 체크하고 집중도와 기분상태도 기록하면서 생활과 공부 페이스를 점검하면서 자기관리를 엄격히 해 나갔습니다.
처음에는 공부방법을 몰라 교과서 내용을 한글자 한글자 노트에 옮겨 적으면서 암기하려 했던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친구의 조언을 듣고서는 교과서를 읽으면서 머릿속으로 내용을 떠올리고 그것을 이해하고 음미하고 정리해보는 식으로 방법의 축을 삼았고, 나의 모든 정신기능이 교과서의 내용 속으로 몰입되어 가도록 노력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 좀 무리하게 공부를 했는지 두달정도 지나자 몸이 극도의 만성피로 상태에 빠져 매우 힘들었습니다. 감기도 쉽게 걸리고 한약을 지어먹어도 별 효험이 없어 피로감을 벗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공장에서 3일씩 철야하고는 몇분 동안 졸도했던 과거의 힘들었던 경험을 생각하면서 최대한 버티려고 했습니다. 그 대신 몸이 너무 피곤할 때는 집에 돌아와 한 시간 정도 잠자고 다시 일어나 이불 위에 엎드려 누워서 경제학이나 문화사의 어느 한 부분을 펼쳐서 읽고는 했습니다. 잠자리에 들면서도 그날 공부했던 내용을 떠올려 생각해보고 다음날 공부할 부분을 생각해보다가 잠이 들곤 했습니다. 그러면 다음날 아침에 일어날 때는 몸은 피곤해도 그 날 공부할 내용에 대한 궁금증과 의욕을 가지고 공부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이런 식으로 해서 하루하루의 공부가 연속성을 가지게 되고 그날그날 새로운 의욕으로 출발할 수 있어서 집중도의 유지가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공부하다가 잠깐 화장실에 다녀오는 동안에도 머릿속으로는 공부내용을 계속 다뤄보았고, 공부 이외의 다른 생각을 했던 모든 시간을 단 5분이라도 생활일지 노트에 체크하면서 그런 시간을 최소화하고자 했습니다. 자투리 시간들도 가능한 한 모두 공부한 내용 한 토막을 생각하는 시간으로 활용하려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해서 물리적으로는 같은 시간일지라도 공부의 집중도와 밀도는 꽤 높지 않았는가 생각합니다.
#3. 공부방법
그리고 공부 방법에 있어서는 그 과목을 읽을 때에는 전반적인 용어와 내용의 윤곽을 파악하기 위해 속독을 하고 2회독째 부터는 최대한 정독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습니다. 기본적이고 중요한 개념이나 법리가 나올 때에는 그것이 기출문제이든 아니면 결코 출제 가능성이 없는 것일지라도 몇 시간씩 붙들고서 머릿속에서 그 개념 및 법리의 연관 체계가 명확히 그려질 때까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정리해 보았고, 익히기 힘들면 체크해 두고는 일단 넘어갔다가 읽어나가는 중에 관련된 사항이 나오면 앞으로 돌아가서 서로 내용을 연결시켜 이해해보려고 했습니다.
단편적인 내용들에 대해서는 한번 유심히 읽어두는 정도로 하고 반면 앞뒤 관련이 많은 개념이나 내용들에 대해서는 시간을 아끼지 않고 머릿속에 그려질 때까지 음미해보고 연결시켜 생각해보고 암기하고 했습니다. 그리고 2회 정독이 안 된 부분은 3회에는 특히 유의해서 정독하는 식으로 해서 결국 회독수가 늘어 가면서는 교과서 내용 중에서 정독하지 않은 곳이 거의 없을 정도가 되도록 했습니다. 특히 2차 시험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교과서 정독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머릿속에서 다뤄보고 그려보지 않고, 그냥 눈으로만 읽어서는 책을 덮고 나면 몇몇 단편적인 사항만 기억에 남아있고, 다음 번 회독이 돌아올 때는 내용에 대한 체계는 안 서있고 또다시 단편적 암기의 부담만을 방대하게 안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공부 방법 면에서는 수험생이 자칫 빠지기 쉬운 함정이라고 생각되는 바를 지적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기본 개념과 기본 법리에 대해서는 얼핏 보아 쉽다고 생각하게 되고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는 식으로 가볍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극히 미세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교수님도 잘 모르고 쓴 듯한 내용들에 대해 의욕을 부리고 그것이 실력을 높여주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제 자신도 처음에는 그런 식의 생각을 했었고, 미세한 것, 특히 저자의 허점으로 보이는 것에 대해 동료들과 해결될 리 없는 논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만 그것은 착각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 그래서 깊이깊이 새겨야 할 것은 기본적인 개념과 법리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그 개념이나 법리에 대해서 이론적인 근거, 정책적인 근거, 실정법적인 근거 등 제반 근거를 생각해보고 그 개념이나 법리가 어떤 기능을 하고, 어떤 내용으로 전개되는가, 그리고 어떤 미흡한 점이 있는가 등을 다각도로 생각해 보고, 그것을 머릿속에 체계적으로 연상해보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이제는 그룹 스터디 경험을 회고해 보겠습니다. 제 경우 1차 시험 준비 기간에 체계적인 그룹 스터디는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의문 나는 것을 서로 이야기해보는 친구나 후배들이 있어서 도움이 됐고 과목에 따라서 외국어 공부를 함께 한다든가, 경제학 모의고사를 시간을 정해놓고 함께 풀어본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하자면 혼자 공부하면 흐지부지되기 쉬운 것에 대해서만 두 명이든 세 명이든 형식을 갖출 것 없이 간편하게 함께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2차 시험 준비 기간에는 후배들과 함께 여섯 명이 스터디 그룹을 이뤄 함께 공부했습니다. 그룹 스터디의 내용은 과목 순서와 진도를 비슷하게 잡고 1주에 1회 정도 모의시험을 치르고 답안지를 돌려보는 것을 했습니다. 그룹 스터디의 목적을 각자의 공부 페이스를 꾸준히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과 실전 답안 작성 연습을 하는 것에 초점을 둔 셈입니다. 공부 내용에 대한 논쟁은 가급적 피했고 논쟁을 하더라도 적절한 수준을 넘지 않도록 절제하려 했습니다. 왜냐하면 직전에 그 내용을 읽고 생각하던 사람은 세부적인 것까지 파고들면서 이야기할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자기가 잘 모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불안감과 초조감을 가지게 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 논쟁은 서로 지기 싫어하는 심리와 말꼬리를 잡고 상대방의 주장을 무너뜨리려는 폐단이 있을 수 있어 자칫 각자가 의욕을 엉뚱한 방향으로 쏟을 우려가 있고 마음의 손상을 입을 우려도 있기 때문입니다.
공부 페이스가 흐트러지지 않는 한에서는 가장 취약부분 보충 기간도 가지도록 하고, 너무 쫓겨서 각자의 스타일과 페이스를 잃지 않도록 배려하였지만, 그래도 개성이 다른 여러 사람이 모여서 보조를 맞추려니 각자 나름의 부담감과 애로사항이 있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4. 슬럼프 경험
단조로운 생활에 지칠 대로 지치고 공부가 마음만큼 진척이 되지 않을 때 슬럼프(침체 기간)가 찾아왔습니다. 생활이 너무나 황량하게 느껴지고 울혈이 가슴속을 짓누르는 것 같고 한없이 외로워 위안 받고 싶고 심한 추락감과 참담한 기분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제 경우는 2차 준비 기간 중 시험을 얼마 남기지 않은 3ㆍ4월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공부 장소도 바꾸어보고 했으나 공부는 진척이 되지 않고, 우울한 기분이 장기간 계속됐습니다. 이렇게 괴롭고 진척이 안 될 바에는 무엇을 위해 고시공부를 하는가 하는 회의와 어두운 충동이 일어 아예 공부를 포기해 버릴까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살아오면서 죽음의 고비도 견뎌냈던 것을 생각하며 아무리 극한적인 상황에서도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 새로운 상황이 온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새기고, 나보다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참담한 상황에서도 밝게 살아가는 맑은 사람들을 떠올리면서 내 정신이 부서지기 전까지는 버티자고 마음을 다졌습니다. 공부가 잘 안 돼도 공부를 하면서 견디는 그 순간 순간은 고문을 받은 것처럼 괴롭고 쓰라렸습니다. 가슴에 피눈물이 고였습니다. 마음을 다지고 공부에 겨우 마음이 가다가도 다시 음습한 기분이 슬며시 나를 둘러싸 괴로운 싸움으로 나를 끌어냈습니다.
이런 싸움에 지쳐 맥이 풀리고 멍한 순간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계속 일정 시간 이상 공부를 하면서 버텼습니다. 슬럼프가 나를 괴롭힐 만큼 괴롭히고 나서야 서서히 맑은 집중력이 살아났습니다. 아마 슬럼프가 5월경에 찾아왔다면 저는 결코 합격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슬럼프 기간 중에 공부했던 것은 효과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저는 아예 회독수에 넣지 않고 별도로 보충 회독을 했습니다.
슬럼프를 극복하는 방법이 어떤 것이 있을까 생각해보면, 사람의 개성에 따라 천차만별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슬럼프가 오지 않도록 예방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요. 적절한 휴식과 가벼운 기분 전환 등으로 컨디션을 조절하는 것이 그 한 방법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슬럼프가 찾아오면 일단 그것을 자연스럽고 당연한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1차 대비 기간의 계획이나, 2차 대비 기간의 계획을 세울 때에도 슬럼프 기간이 최소 2주일에서 많으면 한 달 이상까지도 올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해서 전체 일정에 여유를 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됩니다. 보통은 그 정도의 슬럼프 기간이 있더라도 보충할 시간은 충분하다고 보입니다.
그 다음은 어떤 식으로든 버텨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방법은 기분 전환도 좋겠고 제 경우처럼 무식하게 버티는 것도 한 방법이 되겠지요. 중요한 것은 자포자기가 돼 생활 패턴과 공부 감각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몇몇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합격자들은 다양한 형태의 괴로운 터널에 봉착됐을 때 틀림없고 그 과정을 훌륭하게 극복하고 합격할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고시 생활의 단조로움과 메마름, 압박과 같은 것은 사람이 평상적인 상태로 오래 버틸 수 있는 생활 형태는 분명히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슬럼프를 자기만이 겪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초조해지기보다는 자신의 인내력과 어둠의 고통을 직면할 용기와 뚝심을 테스트 받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당연히 치러야할 시련, 말하자면 사법시험의 또 하나의 필수 과목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됩니다.
제 경우는 마음의 평정과 생명력을 되찾기 위해 명상도 하고, 학교 뒤 암자에 가서 고요한 기도의 시간을 갖기도 했습니다. 버스를 타는 시간에는 음악도 많이 들었습니다. 인간의 고통과 그 속에서 처절한 사투와 승리, 만물에 대한 애정과 위로를 담고 있는 음악을 들으면서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괴롭고 어두운 터널에 빠져 있을 때 함께 있어준 스터디 그룹 후배들도 저에게는 큰 자극과 위안이 됐습니다. 아마 이들이 함께 있지 않고 저 혼자였다면 고시생활을 포기했을 것입니다.
#5. 1차 대비와 관련하여
우선 생각나는 점은 1차를 경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현행 1차 시험 제도는 법 과목 이외 과목의 비중이 높고 공부를 해도 맞출 수 없는 문제들이 많이 나온다는 점을 볼 때 문제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행 제도 하에서 1차를 합격해야만 2차 응시의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에 동시 합격을 목표로 하는 것이 무리가 아닌지를 냉정히 판단해서 무리라고 생각되면 미련 없이 1차에 집중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1차를 합격하고 나면 힘이 붙게 되므로 2차 준비에 집중도가 훨씬 높아질 수 있습니다. 물론 응시 경험이 많은 경우에는 문제가 다르겠지요.
그리고 과목별 방침에 있어서 제 경우는 법 과목은 1, 2차 공통이고 또 공부와 득점이 어느 정도 비례한다고 판단되어, 법 과목 전반은 90점을 목표로 했습니다. 그리고 법 과목 1회독, 2회독은 전반적인 이해 수준을 확보하는 데 초점을 두고 통독했습니다.
아직 과목 전반에 대해 이해 수준이 부족하기 때문에 공부가 제대로 되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 갈피를 잡기 어려울 때는 각 과목 기출 문제를 검토하면서 공부 방향에 대한 감각을 바로 잡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법 과목 외 다른 과목에 있어서, 경제학은 내용에 대한 이해가 확보되지 않으면 득점이 어렵기 때문에 이해 수준을 확보하는 데 중점을 두고, 80점 정도로 목표를 낮춰 잡았습니다.
문화사, 국사는 80점을 목표로 했고 전반적으로 통독하면서 암기량을 늘리려 했으나, 점수가 잘 안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을 감안해서 법 과목과 선택 과목(제 경우는 국제사법)의 고득점으로 합격 점수를 확보하는 것으로 방침을 세웠습니다. 외국어는 영어를 선택했는데 80점을 목표로 하고 어휘 공부와 문제 풀이로 영어 감각을 회복하는 데 초점을 뒀습니다. 91년 4월에 1차 시험을 치른 결과 최저점수가 문화사에서 67.5점이 나왔고 경제학도 저조했으나 95점의 국제사법, 형법이 점수 나쁜 과목을 보충해 줘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1차 대비와 관련하여 제 경험에 비춰보면 각 과목 내용에 대한 공부는 역시 교과서를 통독하는 것으로 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내용에 대한 공부를 문제집에 의존하는 것은 내용의 연관성 없이 단편적 사항을 암기하는 데 머무를 우려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집은 오히려 실전 감각을 익히기 위해 특히 기출문제를 분석함으로써 교과서의 내용들이 어떻게 문제화돼 출제되는가 하는 유형을 익히고, 교과서 공부의 기초 위에 실전에서 보다 신속히 바른 답을 찾아낼 수 있는 훈련으로 생각하는 게 적절하다고 봅니다.
이런 감각을 염두에 두고 교과서를 문제의 저장고로 바라보고 읽어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차피 실전 문제는 문제집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교과서 내용을 문제화해서 출제하기 때문입니다.
#6. 2차 대비와 관련하여 [생략]
#7. 글을 마치며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던 날 저는 명단을 기다리면서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혔습니다. 최선을 다 했는가 자문해보고 최선을 다했다고 스스로 대답했습니다. 떨어지면 실력이 부족한 것이니 승복하자고 마음을 다졌습니다.
합격자 명단에 이름 석자를 보고 눈물이 핑 돌았지만 기쁨은 누릴 수 없었습니다. 함께 공부하며 고생했고 나에게 위안과 자극이 됐던 스터디그룹 멤버 여섯 사람 중에 두 사람이 명단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내년을 기약하며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고통과 외로움을 짊어지고 분투해야 하는 두 후배의 괴로움이 나에게는 가슴을 적시는 애틋함이 된다는 마음으로 두 후배의 강인한 노력을 기원합니다. 풀무질과 담금질을 통해 고통 속에 성숙한 인간으로 자라날 수 있다는 것을 하늘이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시련과 승리의 드라마를 연출하기 위해 특별히 두 사람을 택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어찌, 제 후배 두 사람 뿐이겠습니까? 지금 이 시간에도 목표를 항해 뼈를 깎는 인고의 과정을 묵묵하게 견뎌내는 많은 수험생들의 그 사연을 제가 잘 알지도 못 하면서 제 이야기만을 주워섬긴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행운이 따라서 합격했지만, 그 행운이 한꺼번에 모든 사람에게는 돌아갈 수 없게끔 돼있는 게 너무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는 곡 이번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조만간 행운의 차례가 돌아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행운이 여러 사람들에게 찾아가는 데 있어서 자기 차례가 왔을 때 그것을 맞아들일 준비를 철저히 하기 바랍니다. 그것은 어떤 괴로움과 나태함도 이기고, 어떤 주관적인 자기 합리화나 자만심에 빠지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수많은 나날의 생활이겠지요. 모든 분의 건강과 건투를 빕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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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후보 공약]
1. 민생 위한 금리 인하
2. 부정투표 의혹 검토하고, 사전투표 제도 개선
3. 통신사 스팸(광고) 문자 척결
4. 촉법소년 문제 해결
5. 신속한 사법 정의 실현
1 year ago | [YT] | 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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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갤러리
[설문조사] 국민의힘 당대표로 누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십니까?
1 year ago | [YT] |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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元, 이재명 연임 수순에 "희대의 정치코미디 연출"
"이제라도 뭉쳐 헌정파괴세력 준동 막아야"
원 전 장관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대표의 지난 대선 슬로건은 '나를 위해, 이재명'이었으나, 속마음은 '이재명, 나를 위해'였다"고 적었다.
1 year ago | [YT] | 1,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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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갤러리
[원희룡 명함에 새겨진 문구]
우리 모두 동지입니다.
내부에서 싸우다가, 망할까봐 결심했습니다.
이러다가 다 죽습니다. 마지막 기회일지 모릅니다. 우리가 다 뭉쳐도 버겁고, 무도한 상대가 있습니다.
- 원희룡 -
1 year ago | [YT] | 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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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前 장관, 7·23 與전당대회 출마 결심
"당정이 한뜻으로 민심 받들어야"
1 year ago (edited) | [YT] |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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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지방자치대상 수상》 원희룡 전 장관(행정), 소진광 교수(지방분권), 박우량 군수(특별상)
원 전 장관은 국회의원과 제주지사 경험을 토대로 국토 균형발전 정책에 이바지한 공로를 평가받았다.
지방자치대상은 지방분권과 지방행정에 기여한 학자, 정책가 등을 각 학술단체로부터 추천받아 10여 명의 전문가 심사를 거쳐 선발, 시상한다.
1 year ago | [YT] |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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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尹 대통령 특사로 엘살바도르 방문
1일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에 尹 친서 전달
'지도부 공백' 국힘 당대표 후보 거론…특사 임명, 전대 '윤심' 반영 해석
2 years ago | [YT] | 2,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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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나의 수험생활과 공부 비법"
(1992년 사법시험 수석 합격)
우선 남이 앉아야 할 자리에 대신 앉은 염치 없는 기분이 듭니다만 수험생 여러분께 인사드립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고시 합격의 목표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고 계신 수험생 각자의 그 의지와 분투에 경의와 공감을 느낍니다. 만에 하나 제 이야기가 수험생들에게 마음의 짐을 덜어주지는 못할망정 짐을 얹을까봐 곤혹스럽기 짝이 없지만 너그럽게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1. 고시에 응시하기까지
저는 1964년 제주도에서 태어났고 1982년에 제주 제일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집안은 귤농사를 짓는 넉넉지 못한 살림이었고, 부모님께서는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서울에 와 대학에 입학한 후 학생운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여 학교에서 유기정학을 받았었고, 그 이후에는 구로 공단에서 야학활동을 하고 인천공단에서 공장생활을 했었습니다. 학교는 소홀히 했고 경찰의 주시를 받는 가운데 과외교사와 번역으로 생활비를 벌면서 거의 최저수준의 생활을 하고 몇 년간을 운동에 열중했습니다.
휴학을 반복하고 학점이 모자라 입학 한 지 8년 만인 89년에 어렵게 졸업했습니다. 89년경부터 운동이 직면한 문제들에 대해 고민이 깊어지다가 90년에 들어서 개인의 진로를 고심하게 되어 사회에서 구체적이고 안정된 위치를 가지고, 그중에서 경력을 덜 문제 삼는 사법시험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2. 수험생활
운동을 하다가 관계를 정리하고 고시 준비를 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미안한 마음으로 고시공부 기간 내내 마음고생이 심했었습니다. 그러나 생활만큼은 운동하던 당시보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지려고 했습니다.
처음 고시공부를 시작했을 때 먼저 고시공부하고 있던 친구들과 후배들의 조언과 격려에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시작이 늦은 만큼 남들보다 더 공부해야한다는 부담감도 많았지만 최대의 노력과 집중력을 기울여야한다는 각오와 의지가 강했습니다.
거처를 학교 근처로 옮기고 학교 도서관에 아침 7시에 나가 밤 11시까지 공부에 집중했습니다. 생활은 최대한 단순화시키고 집중상태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했습니다. 조그만 생활일지 노트를 마련해서 그날 공부한 시간을 체크하고 집중도와 기분상태도 기록하면서 생활과 공부 페이스를 점검하면서 자기관리를 엄격히 해 나갔습니다.
처음에는 공부방법을 몰라 교과서 내용을 한글자 한글자 노트에 옮겨 적으면서 암기하려 했던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친구의 조언을 듣고서는 교과서를 읽으면서 머릿속으로 내용을 떠올리고 그것을 이해하고 음미하고 정리해보는 식으로 방법의 축을 삼았고, 나의 모든 정신기능이 교과서의 내용 속으로 몰입되어 가도록 노력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 좀 무리하게 공부를 했는지 두달정도 지나자 몸이 극도의 만성피로 상태에 빠져 매우 힘들었습니다. 감기도 쉽게 걸리고 한약을 지어먹어도 별 효험이 없어 피로감을 벗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공장에서 3일씩 철야하고는 몇분 동안 졸도했던 과거의 힘들었던 경험을 생각하면서 최대한 버티려고 했습니다. 그 대신 몸이 너무 피곤할 때는 집에 돌아와 한 시간 정도 잠자고 다시 일어나 이불 위에 엎드려 누워서 경제학이나 문화사의 어느 한 부분을 펼쳐서 읽고는 했습니다. 잠자리에 들면서도 그날 공부했던 내용을 떠올려 생각해보고 다음날 공부할 부분을 생각해보다가 잠이 들곤 했습니다. 그러면 다음날 아침에 일어날 때는 몸은 피곤해도 그 날 공부할 내용에 대한 궁금증과 의욕을 가지고 공부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이런 식으로 해서 하루하루의 공부가 연속성을 가지게 되고 그날그날 새로운 의욕으로 출발할 수 있어서 집중도의 유지가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공부하다가 잠깐 화장실에 다녀오는 동안에도 머릿속으로는 공부내용을 계속 다뤄보았고, 공부 이외의 다른 생각을 했던 모든 시간을 단 5분이라도 생활일지 노트에 체크하면서 그런 시간을 최소화하고자 했습니다. 자투리 시간들도 가능한 한 모두 공부한 내용 한 토막을 생각하는 시간으로 활용하려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해서 물리적으로는 같은 시간일지라도 공부의 집중도와 밀도는 꽤 높지 않았는가 생각합니다.
#3. 공부방법
그리고 공부 방법에 있어서는 그 과목을 읽을 때에는 전반적인 용어와 내용의 윤곽을 파악하기 위해 속독을 하고 2회독째 부터는 최대한 정독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습니다. 기본적이고 중요한 개념이나 법리가 나올 때에는 그것이 기출문제이든 아니면 결코 출제 가능성이 없는 것일지라도 몇 시간씩 붙들고서 머릿속에서 그 개념 및 법리의 연관 체계가 명확히 그려질 때까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정리해 보았고, 익히기 힘들면 체크해 두고는 일단 넘어갔다가 읽어나가는 중에 관련된 사항이 나오면 앞으로 돌아가서 서로 내용을 연결시켜 이해해보려고 했습니다.
단편적인 내용들에 대해서는 한번 유심히 읽어두는 정도로 하고 반면 앞뒤 관련이 많은 개념이나 내용들에 대해서는 시간을 아끼지 않고 머릿속에 그려질 때까지 음미해보고 연결시켜 생각해보고 암기하고 했습니다. 그리고 2회 정독이 안 된 부분은 3회에는 특히 유의해서 정독하는 식으로 해서 결국 회독수가 늘어 가면서는 교과서 내용 중에서 정독하지 않은 곳이 거의 없을 정도가 되도록 했습니다. 특히 2차 시험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교과서 정독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머릿속에서 다뤄보고 그려보지 않고, 그냥 눈으로만 읽어서는 책을 덮고 나면 몇몇 단편적인 사항만 기억에 남아있고, 다음 번 회독이 돌아올 때는 내용에 대한 체계는 안 서있고 또다시 단편적 암기의 부담만을 방대하게 안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공부 방법 면에서는 수험생이 자칫 빠지기 쉬운 함정이라고 생각되는 바를 지적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기본 개념과 기본 법리에 대해서는 얼핏 보아 쉽다고 생각하게 되고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는 식으로 가볍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극히 미세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교수님도 잘 모르고 쓴 듯한 내용들에 대해 의욕을 부리고 그것이 실력을 높여주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제 자신도 처음에는 그런 식의 생각을 했었고, 미세한 것, 특히 저자의 허점으로 보이는 것에 대해 동료들과 해결될 리 없는 논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만 그것은 착각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 그래서 깊이깊이 새겨야 할 것은 기본적인 개념과 법리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그 개념이나 법리에 대해서 이론적인 근거, 정책적인 근거, 실정법적인 근거 등 제반 근거를 생각해보고 그 개념이나 법리가 어떤 기능을 하고, 어떤 내용으로 전개되는가, 그리고 어떤 미흡한 점이 있는가 등을 다각도로 생각해 보고, 그것을 머릿속에 체계적으로 연상해보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이제는 그룹 스터디 경험을 회고해 보겠습니다. 제 경우 1차 시험 준비 기간에 체계적인 그룹 스터디는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의문 나는 것을 서로 이야기해보는 친구나 후배들이 있어서 도움이 됐고 과목에 따라서 외국어 공부를 함께 한다든가, 경제학 모의고사를 시간을 정해놓고 함께 풀어본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하자면 혼자 공부하면 흐지부지되기 쉬운 것에 대해서만 두 명이든 세 명이든 형식을 갖출 것 없이 간편하게 함께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2차 시험 준비 기간에는 후배들과 함께 여섯 명이 스터디 그룹을 이뤄 함께 공부했습니다. 그룹 스터디의 내용은 과목 순서와 진도를 비슷하게 잡고 1주에 1회 정도 모의시험을 치르고 답안지를 돌려보는 것을 했습니다. 그룹 스터디의 목적을 각자의 공부 페이스를 꾸준히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과 실전 답안 작성 연습을 하는 것에 초점을 둔 셈입니다. 공부 내용에 대한 논쟁은 가급적 피했고 논쟁을 하더라도 적절한 수준을 넘지 않도록 절제하려 했습니다. 왜냐하면 직전에 그 내용을 읽고 생각하던 사람은 세부적인 것까지 파고들면서 이야기할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자기가 잘 모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불안감과 초조감을 가지게 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 논쟁은 서로 지기 싫어하는 심리와 말꼬리를 잡고 상대방의 주장을 무너뜨리려는 폐단이 있을 수 있어 자칫 각자가 의욕을 엉뚱한 방향으로 쏟을 우려가 있고 마음의 손상을 입을 우려도 있기 때문입니다.
공부 페이스가 흐트러지지 않는 한에서는 가장 취약부분 보충 기간도 가지도록 하고, 너무 쫓겨서 각자의 스타일과 페이스를 잃지 않도록 배려하였지만, 그래도 개성이 다른 여러 사람이 모여서 보조를 맞추려니 각자 나름의 부담감과 애로사항이 있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4. 슬럼프 경험
단조로운 생활에 지칠 대로 지치고 공부가 마음만큼 진척이 되지 않을 때 슬럼프(침체 기간)가 찾아왔습니다. 생활이 너무나 황량하게 느껴지고 울혈이 가슴속을 짓누르는 것 같고 한없이 외로워 위안 받고 싶고 심한 추락감과 참담한 기분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제 경우는 2차 준비 기간 중 시험을 얼마 남기지 않은 3ㆍ4월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공부 장소도 바꾸어보고 했으나 공부는 진척이 되지 않고, 우울한 기분이 장기간 계속됐습니다. 이렇게 괴롭고 진척이 안 될 바에는 무엇을 위해 고시공부를 하는가 하는 회의와 어두운 충동이 일어 아예 공부를 포기해 버릴까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살아오면서 죽음의 고비도 견뎌냈던 것을 생각하며 아무리 극한적인 상황에서도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 새로운 상황이 온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새기고, 나보다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참담한 상황에서도 밝게 살아가는 맑은 사람들을 떠올리면서 내 정신이 부서지기 전까지는 버티자고 마음을 다졌습니다. 공부가 잘 안 돼도 공부를 하면서 견디는 그 순간 순간은 고문을 받은 것처럼 괴롭고 쓰라렸습니다. 가슴에 피눈물이 고였습니다. 마음을 다지고 공부에 겨우 마음이 가다가도 다시 음습한 기분이 슬며시 나를 둘러싸 괴로운 싸움으로 나를 끌어냈습니다.
이런 싸움에 지쳐 맥이 풀리고 멍한 순간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계속 일정 시간 이상 공부를 하면서 버텼습니다. 슬럼프가 나를 괴롭힐 만큼 괴롭히고 나서야 서서히 맑은 집중력이 살아났습니다. 아마 슬럼프가 5월경에 찾아왔다면 저는 결코 합격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슬럼프 기간 중에 공부했던 것은 효과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저는 아예 회독수에 넣지 않고 별도로 보충 회독을 했습니다.
슬럼프를 극복하는 방법이 어떤 것이 있을까 생각해보면, 사람의 개성에 따라 천차만별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슬럼프가 오지 않도록 예방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요. 적절한 휴식과 가벼운 기분 전환 등으로 컨디션을 조절하는 것이 그 한 방법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슬럼프가 찾아오면 일단 그것을 자연스럽고 당연한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1차 대비 기간의 계획이나, 2차 대비 기간의 계획을 세울 때에도 슬럼프 기간이 최소 2주일에서 많으면 한 달 이상까지도 올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해서 전체 일정에 여유를 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됩니다. 보통은 그 정도의 슬럼프 기간이 있더라도 보충할 시간은 충분하다고 보입니다.
그 다음은 어떤 식으로든 버텨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방법은 기분 전환도 좋겠고 제 경우처럼 무식하게 버티는 것도 한 방법이 되겠지요. 중요한 것은 자포자기가 돼 생활 패턴과 공부 감각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몇몇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합격자들은 다양한 형태의 괴로운 터널에 봉착됐을 때 틀림없고 그 과정을 훌륭하게 극복하고 합격할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고시 생활의 단조로움과 메마름, 압박과 같은 것은 사람이 평상적인 상태로 오래 버틸 수 있는 생활 형태는 분명히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슬럼프를 자기만이 겪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초조해지기보다는 자신의 인내력과 어둠의 고통을 직면할 용기와 뚝심을 테스트 받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당연히 치러야할 시련, 말하자면 사법시험의 또 하나의 필수 과목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됩니다.
제 경우는 마음의 평정과 생명력을 되찾기 위해 명상도 하고, 학교 뒤 암자에 가서 고요한 기도의 시간을 갖기도 했습니다. 버스를 타는 시간에는 음악도 많이 들었습니다. 인간의 고통과 그 속에서 처절한 사투와 승리, 만물에 대한 애정과 위로를 담고 있는 음악을 들으면서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괴롭고 어두운 터널에 빠져 있을 때 함께 있어준 스터디 그룹 후배들도 저에게는 큰 자극과 위안이 됐습니다. 아마 이들이 함께 있지 않고 저 혼자였다면 고시생활을 포기했을 것입니다.
#5. 1차 대비와 관련하여
우선 생각나는 점은 1차를 경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현행 1차 시험 제도는 법 과목 이외 과목의 비중이 높고 공부를 해도 맞출 수 없는 문제들이 많이 나온다는 점을 볼 때 문제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행 제도 하에서 1차를 합격해야만 2차 응시의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에 동시 합격을 목표로 하는 것이 무리가 아닌지를 냉정히 판단해서 무리라고 생각되면 미련 없이 1차에 집중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1차를 합격하고 나면 힘이 붙게 되므로 2차 준비에 집중도가 훨씬 높아질 수 있습니다. 물론 응시 경험이 많은 경우에는 문제가 다르겠지요.
그리고 과목별 방침에 있어서 제 경우는 법 과목은 1, 2차 공통이고 또 공부와 득점이 어느 정도 비례한다고 판단되어, 법 과목 전반은 90점을 목표로 했습니다. 그리고 법 과목 1회독, 2회독은 전반적인 이해 수준을 확보하는 데 초점을 두고 통독했습니다.
아직 과목 전반에 대해 이해 수준이 부족하기 때문에 공부가 제대로 되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 갈피를 잡기 어려울 때는 각 과목 기출 문제를 검토하면서 공부 방향에 대한 감각을 바로 잡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법 과목 외 다른 과목에 있어서, 경제학은 내용에 대한 이해가 확보되지 않으면 득점이 어렵기 때문에 이해 수준을 확보하는 데 중점을 두고, 80점 정도로 목표를 낮춰 잡았습니다.
문화사, 국사는 80점을 목표로 했고 전반적으로 통독하면서 암기량을 늘리려 했으나, 점수가 잘 안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을 감안해서 법 과목과 선택 과목(제 경우는 국제사법)의 고득점으로 합격 점수를 확보하는 것으로 방침을 세웠습니다. 외국어는 영어를 선택했는데 80점을 목표로 하고 어휘 공부와 문제 풀이로 영어 감각을 회복하는 데 초점을 뒀습니다. 91년 4월에 1차 시험을 치른 결과 최저점수가 문화사에서 67.5점이 나왔고 경제학도 저조했으나 95점의 국제사법, 형법이 점수 나쁜 과목을 보충해 줘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1차 대비와 관련하여 제 경험에 비춰보면 각 과목 내용에 대한 공부는 역시 교과서를 통독하는 것으로 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내용에 대한 공부를 문제집에 의존하는 것은 내용의 연관성 없이 단편적 사항을 암기하는 데 머무를 우려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집은 오히려 실전 감각을 익히기 위해 특히 기출문제를 분석함으로써 교과서의 내용들이 어떻게 문제화돼 출제되는가 하는 유형을 익히고, 교과서 공부의 기초 위에 실전에서 보다 신속히 바른 답을 찾아낼 수 있는 훈련으로 생각하는 게 적절하다고 봅니다.
이런 감각을 염두에 두고 교과서를 문제의 저장고로 바라보고 읽어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차피 실전 문제는 문제집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교과서 내용을 문제화해서 출제하기 때문입니다.
#6. 2차 대비와 관련하여
[생략]
#7. 글을 마치며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던 날 저는 명단을 기다리면서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혔습니다. 최선을 다 했는가 자문해보고 최선을 다했다고 스스로 대답했습니다. 떨어지면 실력이 부족한 것이니 승복하자고 마음을 다졌습니다.
합격자 명단에 이름 석자를 보고 눈물이 핑 돌았지만 기쁨은 누릴 수 없었습니다. 함께 공부하며 고생했고 나에게 위안과 자극이 됐던 스터디그룹 멤버 여섯 사람 중에 두 사람이 명단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내년을 기약하며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고통과 외로움을 짊어지고 분투해야 하는 두 후배의 괴로움이 나에게는 가슴을 적시는 애틋함이 된다는 마음으로 두 후배의 강인한 노력을 기원합니다. 풀무질과 담금질을 통해 고통 속에 성숙한 인간으로 자라날 수 있다는 것을 하늘이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시련과 승리의 드라마를 연출하기 위해 특별히 두 사람을 택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어찌, 제 후배 두 사람 뿐이겠습니까? 지금 이 시간에도 목표를 항해 뼈를 깎는 인고의 과정을 묵묵하게 견뎌내는 많은 수험생들의 그 사연을 제가 잘 알지도 못 하면서 제 이야기만을 주워섬긴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행운이 따라서 합격했지만, 그 행운이 한꺼번에 모든 사람에게는 돌아갈 수 없게끔 돼있는 게 너무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는 곡 이번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조만간 행운의 차례가 돌아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행운이 여러 사람들에게 찾아가는 데 있어서 자기 차례가 왔을 때 그것을 맞아들일 준비를 철저히 하기 바랍니다. 그것은 어떤 괴로움과 나태함도 이기고, 어떤 주관적인 자기 합리화나 자만심에 빠지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수많은 나날의 생활이겠지요. 모든 분의 건강과 건투를 빕니다. 감사합니다.
-원희룡-
2 years ago (edited) | [YT] | 5,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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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갤러리
원희룡, 계양서 사전투표…“유권자 선택은 전화 아닌 가슴속에"
마지막 1분까지 온몸으로 뛰어 유권자 믿음 얻어낼 것
2 years ago | [YT] | 5,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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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갤러리
인천 계양을, 이재명 47.7% vs 원희룡 44.3%
3.4%P 差… 오차범위 내 초접전
2일 경기일보가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3월31일부터 4월1일까지 계양구을 선거구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4.4%포인트·그 밖의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2 years ago | [YT] |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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