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 뇌암 투병 손자와 알츠하이머 치매 투병 할머니의 알콩달콩 살아가는 이야기 (The beautiful life story of grandson and grandmother who have been struggling against disease of malignant brain cancer and dementia.)
정한이가 떠난지 벌써 3주가 되었네요. 제 차 옆좌석은 언제나 정한이가 있었는데 이젠 정한이 대신 정한이의 영정사진만이 있습니다. 어딜가도 똑같아요.. 단 한시도 떨어져 있지 않았던 지난날들, 연애를 할 때도 붙어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19년12월 첫 재발로 수술하고부터는 24시간 붙어있었으니.. 이 빈자리를 인정하는데는 시간이 조금 아니 오래..걸릴것 같습니다.
제가 매주 정한이를 보러가고있는데 이번주는 뇌종양 환우모임에서 추모모임으로 함께 정한이를 보고왔습니다. 정한이와 매달 참석했던 뇌종양 환우모임이였어요. 같은 환우다보니 동질감도 있고 매달 오프라인으로도 만나니 서로가 가족처럼 챙기고 응원해주는 분들이예요. 이분들의 부주와 구독자 여러분들의 후원 덕분에 정한이의 새로운 보금자리도 마련할 수 있었던거고요. 구독자 여러분께도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오늘 제가 글을 쓰는건, 정한이를 보러 가고싶어하시는분들이 많으신것 알고있습니다. 마음은 누구나 같으시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것도 알고요. 그래서 마음은 있으시지만 추모관까지 가는 차편이 어려워서 오시기 힘드신분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드리고자 저와 마음동행 매니저님이 함께 동행하려 합니다. 제 차로 이동하는거라 세 분밖에는 더 못 모시지만 날짜는 이번달 26일 토요일이고요 시간은 부산역에서 11시30분에 만나서 출발합니다. 혹시 자차로 바로 오실 분들은 12시반까지 정한이 납골당 신어공원추모관 경남영묘원으로 바로 오시면 됩니다. 가실분은 홍정한씨 카톡으로 톡주세요. 부산역에서 저희와 함께 출발하실 분들은 혹시 인원이 많으시다면 어쩔 수 없이 선착순으로 세분까지 받을께요. 정한이 만나고나서 점심식사도 같이 하려고 합니다. 식당예약을 해야하니 추모관으로 바로 오실분들도 꼭 카톡으로 연락주세요.
정한이가 떠난지 벌써 2주가 되어가는데 감사인사가 너무 늦었습니다. 모든것은 그대로인데 정한이만 없다는게 아직도 믿기지도 않고 인정하고싶지도 않은데 정한이가 없어도 매일 똑같이 흘러가는 시간은 이제 인정해야한다고 말하고있는것만 같아요.
정한이는 잘 보내주고 왔습니다. 함께 슬퍼해주시고 마음 전해주신 덕분에 정한이도 따뜻한 마음안고 갔을것입니다.
정한이 친척분들은 살아생전 정한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있는지 그리고 정한이가 주변사람들에게 얼마나 잘했는지 잘 모르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정한이 마지막 가는길 코시국에도 많은 사람들이 와주시고 입이 닳도록 정한이 칭찬들을 해주시고 교회분들은 발인까지도 진심을 다해 챙겨주셔서 친척분들이 놀라시며 정한이가 짧은생이였지만 80~90세까지 살다가시는분들보다 훨씬 잘살았네,라고 말씀해주셔서 마지막에라도 정한이가 가족들에게 인정받은것 같아 너무 뿌듯하고 좋았습니다.
정한이가 16년 4월 첫 수술을 했으니 횟수로는 7년, 두달 부족한 만 6년을 살다갔네요. 6년이 아니라 60년이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래도 정한이가 마지막까지 힘내주어서, 이렇게나 견뎌주고 제 옆에 조금이라도 더 있어주어서 너무나 감사해요.
정한이 살아있을 땐 제가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생각해서 후회는 없을줄 알았는데 그게 전혀 아니더라구요. 온통 후회투성이..예요. 어느분께서 온맘을 다했기에 후회도 남는거라고 하시던데 정말 후회 투성이예요. 결국 제주도 쿠폰은 써보지도 못했고요.. 휠체어타고 병원밖으로 나가서 정한이가 좋아했던 사람들도 만나고 친구들도 만나게 해줄껄, 몇달을 병원병실에만 있었던것이 가장 후회가 되요.. 서울대에서는 조금씩이라도 움직이라고 리프트로 매일 태워주시던 휠체어를 정한이가 강직이 너무 심해지면서 몸을 일자로 뻗어버리니 나중에는 휠체어도 못타게 되었었고 그래서 병원을 옮기고도 휠체어 태울 생각을 전혀 못하고있었습니다. 1월에는 정한이가 여전히 인지는 돌아오지않았어도 정한이를 힘들게했던 강직,식은땀,고열,과호흡 등의 신체적인 증상들이 많이 호전되어서 매일 맞던 몰핀을 맞지않아도 될 정도로 좋아졌었고 그래서 휠체어도 탈수 있을 정도가 되었었는데 왜 그때는 휠체어 생각을 못했었는지.. 2월이 되어서야 정한이를 침대에서 휠체어로, 휠체어에서 침대로 옮겨줄 이동식 리프트를 알아보다가 정한이같은 중증장애인은 리클라이닝형(침대형) 휠체어도 지원받을 수 있다는것을 알게되었고 앞으로 정한이를 편한 휠체어에 태우고 바깥구경 시켜줄 생각에 기대에 차서 리프트와 휠체어 주문도 다했는데 정한이가 눈감던날, 주문한 휠체어가 나왔다고 갖다준다고 업체에서 전화를 받았어요.. 그날은 저녁에 정한이가 좋아했던 몇몇분들과 단체보이스톡도 하기로 약속한 날이였는데 뭐가 그리 급해서 그리도 빨리 가버렸는지, 정한이는 결국 휠체어도 타보지못하고 좋아했던분들 목소리도 듣지못하고 급하게 눈감았습니다. 그래도 정한이는 눈감기 바로 전까지도 모든 심전도 수치가 정상이였고 순식간에 호흡이 0이 되면서 눈을 감았습니다. 고통스럽지 않게 편하게 눈을 감았다는 뜻입니다. 서울대에서 2주 선고받았을때는 2주가 아니라 단 2시간도 보기안쓰러울 정도로 너무너무 고통스러워했던 모습에 하나님께 데려가시려거든 제발 편하게만 있다갈 수있게 해달라고 매일같이 기도드렸었는데 그때의 제 기도를 들어주셨나봅니다. 병원을 옮기고는 제발 일으켜달라 기도드렸는데 이 기도를 들어주셨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이제는 마음껏 걷고 마음껏 뛰고 입으로 맛있는거 먹고 가족들과 이야기 꽃 피우고 있을거란 생각으로, 그 생각 하나로 위안을 삼습니다.
코로나가 정한이 살아생전엔 정한이 지인분,친구들 얼굴도 못보게 만들더니 이놈의 코로나가 정한이 가는길엔 저를 떨어트려놓았습니다. 장례식장앞에 있으면서도 입관도, 발인도 참석하지 못하는 제 마음은 말로 표현조차 힘들었습니다. 특히 입관때는 울산큰아버님께서 혼자 정한이를 보내주셨는데 정한이를 너무 외롭게 보내는것 같아 더욱 마음이 찢어졌습니다. 입관을 함께 하지 못해 큰아버지께 전화를 부탁드려서 스피커폰으로 정한이에게 그동안 너무 고생많았다고, 지금까지 견뎌주고 내옆에 있어줘서 고맙다고, 너와 함께한 하루하루가 행복이였다고, 너무 많이 사랑한다고, 이제 좋은곳가서 할머니도 만나고 엄마아빠도 만나고 하나님도 만나고 거기서는 먹고싶은거 다먹고 하고싶은거 다하면서 그렇게 살으라고.. 얘기해주었습니다. 그날 저녁 어떤분이 장례식장 앞에 차를 세워두고 차안에서 울고만 있던 저에게 쪽지를 하나 전해주셨습니다. (그때받은 쪽지는 사진으로 올렸습니다.) 쪽지를 보고 정한이가 가는길 마지막으로 제 목소리를 들었을거라 생각하니 정말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글로나마 장례식장 그 직원분께 감사인사드립니다. 그리고 입관은 보지못했지만 정한이가 눈 감는 순간을 함께 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저는 정한이를 통해 배운게 정말 많아요. 정한이를 가장 가까이서 보면서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이 나라면 이렇게 못할것같다는 생각이였습니다. 이렇게 긍정적일 수 있을까? 하루아침에 말이 안나오게 된것이 정말 답답할만도 한데 정한이는 잠시 우울해 했을 뿐 금방 털고일어났고, 평생 쓰던 오른손이 움직여지지않으니 정말 답답했을텐데 금방 왼손을 쓰며 이겨내는 모습을 보여주었어요. 매번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났어요. 정한이 덕분에 건강한 사람들은 모르는 평범한 일상이 행복이라는것을 알았고 그래서 정한이와의 모든 순간이 행복했습니다. 정말 자주 이야기했어요. 싸우는 연인들을 볼 때면, 우리는 먹지못하는 음식을 먹는 사람들을 볼 때면, "저 사람들은 저게 행복이란것도 모르겠지? 진짜 일상이 행복이고 살아있는게 행복인데. 그치?" "응!" "우리 너무 행복하다! 그치?" "응!^^" 정한이와 정말 자주 나누던 대화였어요. "우린 정말 행복하다!^^" 저는 정한이 덕분에 보통 사람들은 이 나이에 하지못할 경험도 미리 했으니 나중에 혹여 우리 부모님 연로하셔서 간호할 일이 생기면 누구보다 편하게 잘 해드릴 수도 있을것같아요^^
정한이는 암과 싸우며 호스피스를 준비하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안좋았던 적도 있었고 세번, 네번의 재발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씩씩하게 이겨내고 참 열심히 해주었어요. 하지만 인명은 재천이라던가요 작년 4월 경미한 교통사고 이후 정한이가 2주간 경련을 했는데 암이 없던 우측으로 암이 확 커져있었습니다. 이것이 시작이였어요. 항암하며 잠시 몇달 좋아지기도 했지만 10월부터 정한이는 말하지도 먹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정한이는 본인의 힘으로 앉아있을 수 있었던 마지막 순간까지도 팔재활하는 모습을 보여줄 정도로 의지를 놓지않았던것 같습니다. 눈 감기 바로 전에는.. 인지도 없던 정한이가 눈물을 주르륵 흘렸는데.. 정한이의 평소 살고자했던, 삶에 대한 강했던 의지를 생각해보면 그 눈물의 의미가 눈감기싫다.가기 싫다, 그런 마음이였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어서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지금도 무슨 의미였을까, 그 눈물의 의미가 너무 궁금해요. 저한테 미안한 마음으로 흘린 눈물이였을거다,라고도 말씀들 하시는데 정말 차라리 그런 마음이였다면 좋았겠단 생각이 들어요. 가기싫어 흘린 눈물이라면 너무 마음 아프니까요..
너무나도 아까운 청년이지만 본인의 바람대로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쳤고 아버지의 유언대로 훌륭한 사람으로 살다 갔기에 너 정말정말 잘 살았다 얘기해주고 싶어요. 정한이가 6년간 암과 싸우며 열심히도 살았던 그 시간을, 정한이 옆에서 힘이 되어주고자했던 저의 4년의 시간을 이 짧은글로 다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앞으로도 정한이를 추억하고 기억하며 조금씩 써내려갈 생각입니다.
정한이는 김해 경남영묘원 신어공원추모관 2층 가야관 J-204에 안치했습니다. 정한이가 자식이 있는것도 아니고 저도 제 삶 살기바라시는 마음에서 친척분들 뜻으로 정한이를 안치하지않고 한줌 재로 뿌려질뻔한 상황도 있었지만 정한이 마지막 가는길에 구독자분들과 정한이와 같은 뇌종양환우 모임에서 보내주신 따뜻한 마음이 모여 좋은곳에 안치할 수 있었습니다. 혼자 자라서 외로움을 정말 많이 탔던 정한이예요. 홍팸여러분, 정한이 구독자여러분들께서 정한이 한번씩 찾아가 주시면 정한이가 덜 외로울것 같아요.
정한이 여자친구 수정입니다. 이번에 병원에서 코로나 확진자들이 많이 나와 층간격리가 되었지만 같은층내에서는 확진자와 비확진자들이 같이 섞여있다보니 물뜨러가는일 외에는 병실에서 나가지도않고 조심했는데도 코로나 양성확진으로 정한이를 외롭게 혼자 부산까지 내려보냈습니다. 불행중 다행으로 간호사선생님께서 보건소에 문의해서 자차로 이동하고 자가격리할 곳이 있으면 자가격리 주소지를 신고하고 이동해도된다고 하셔서 저는 지금 남천장례식장 앞에 와있습니다. 장례식장 앞까지 와서 들어가보지도 못하고 저 안에서 춥고 외롭게 있을 정한이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집니다. 저는 정한이 입관도 화장하는것도 보지못합니다. 어떻게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이 생길 수가 있는건지..
거두절미하고 제가 지금 글을 올리는 이유는 여러분들께 도움을 요청하려고합니다. 정한이 아버지께서 영락공원에 계시기때문에 정한이도 영락공원에 안치하려고했는데 자리가 없다고하네요. 화장도 내일은 부산에서는 화장할 곳도 다 꽉차있어 울산까지 가서 화장을 합니다. 큰아버지는 거기서 화장하고 부산까지 다시 오기는 힘드니까 울산에 자리가 있으면 울산에 안치를 하고 울산에도 자리가 없으면 어디 뿌려주던가하자는 식으로 말씀을 하셔서 제가 펄쩍뛰니 어차피 찾아올 사람도 없지않느냐(지금이야 친구도오고 누구도오고하겠지만 나중에는 자식도 없는데 누가 와보고 관리하겠냐,너도 젊으니 이제 니인생 살아야지 그런 의미셨을꺼예요)하셔서 "제가 가죠! 제가 할꺼예요! 그리고 정한이가 부산에서 나고 자랐는데, 부산에 안치해야 친구들도 한명이라도 더 찾아오죠. 제가 어떻게든 부산쪽으로 자리 알아볼테니까 기다리세요!" 큰소리는 쳤지만 부산어디가 괜찮은지도 모르고 마음이 급한 상황입니다. 부산에 덮개가 대리석으로 되어있는 안치함말고 유리로 되어있는 개방형 안치함이 있는곳으로 아시는곳이 있으시다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얼른 정한이 안치할 곳을 찾아야 부고문자를 돌리는데 마음만 급하네요ㅠ 상황이 시급한 만큼 자리가 있는지도 알아봐주시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한분이 한곳씩만 알아보셔도 저한테는 큰 도움이 될테니까요. 댓글 부탁드려요.
여러분 감사드려요. 일단 유리로 되어있는 개방형안치함이 있는곳이 부산내에는 없다네요. 가장 가까운 김해에 경남영묘원 신어공원추모관 자리있다해서 신어공원으로 결정했어요. 여러분의 마음이 모아져 금방 찾았네요.
안녕하세요. 정한이 여자친구 수정입니다. 정한이가 어제 동공이 열리고 동공반사가 없어서 구독자분들도 마음의 준비를 하실 수 있도록 알려드리는것이 예의일것 같아서 글을 올리려고했는데 너무도 빨리 조금전.. 정한이가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너무도 기가 막히게 저는 오늘 코로나 양성판정이 나와서 정한이 마지막 가는길 함께 하지도 못합니다. 정한이는 부산에 남천장례식장으로 갈꺼고 부산으로 가는 구급차를 기다리는 동안 급하게 글 올립니다. 장례식 일정이 나오면 다시 글 올릴께요. 지금 경황이 없어서 짧게 글 올리는거 이해부탁드립니다.
2년전 19년12월 정한이가 처음 재발해서 수술하고 나왔을때 정한이의 모습을 보고는 다시는 수술하지말자고 했었는데 이번에는 수술중 bed death할 수도 있는 위험한 수술이라고 들은터라 기도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정한이 현재 상태는, 연하장애가 와서 콧줄로 식사하면서 몸무게가 50kg까지 빠졌고, 말을 전혀 하지못하고, 인지도 거의 되지않고, 시상하부까지 문제가 생겨 체온조절이 안되서 하루종일 고열에 시달리고, 숨쉬는것이 힘들어서 기도절개를 했는데도 근본적으로 기도의 문제가 아니라 머리의 문제이기 때문에 숨쉬는게 여전히 힘들고, 뇌압때문에 강직으로 온몸에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하루종일 힘이들어가서 땀을 비오듯 쏟아내며 너무너무 힘들어합니다.
수술을 결정하는 며칠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몇번이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정말 생지옥이란 말이 딱 어울리는 며칠이였습니다.
지난달, 정한이가 더 이상의 항암은 원치않아서 서울대에 11월1일로 감마나이프를 예약해놓고 기다리던 중 연하장애로 밥도 약도 먹지못해서 기력도 떨어지고 경련까지와서 응급실을 갔습니다. 콧줄을 꼈고 입원을 했고 감마나이프를 기다리고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가 다르게 컨디션이 떨어지더니 위에서 언급한 상태가 되어버렸고 바로 MRI찍고 영상을 보고온 담당교수님께서 현재상태로는 감마를 할 수 없다, 감마를 하면 부종이 생기는데 암이 너무 커져서 그 부종이 들어갈 공간조차없다, 지금 할수있는건 수술밖에 없다고하셨습니다. 그러나 수술도 암제거가 목적이 아니라 암을 조금 떼어내서 뇌압을 낮춰주어 뇌압때문에 생기는 고열, 호흡곤란, 강직 등 정한이를 하루종일 힘들게하는 증상들을 완화시키는것이고 암은 이미 너무 커져있어서 다 때내는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신경을 건들지않는선에서 최대한 떼어내서 시간을 벌어주는 정도다. 그 시간이란것도 교모세포종이란 암이 워낙 성장이 빠른 암종이라 단 몇달이면 걷어낸만큼 다시 자랄꺼다. 최악에는 2주~4주만에도 다시 자랄수있다. 하지만 수술안하면 지금상태로는 정한이가 한달도 못버틸거다. 정한이가 스스로 정리할 시간을 만들어주고싶다하지 않았나, 수술하면 응급실 들어왔을때 정도는 회복할수있지않을까 생각한다고 하셨습니다. 정한이가 힘들어지면서 교수님께 정한이가 이렇게 갑자기 말을 못하게되지만 안았어도 더이상의 의미없는 병원치료안하고 정한이가 스스로 정리할 수있게 둘이 시간가지며 남은시간 보냈을거다, 정한이가 분명 하고싶은 말들이 있을텐데..라고 울면서 얘기한적이 있었는데 그 말을 기억하고 계시더라구요. 다만 워낙 큰수술이라 단몇달을 위해 수술을 하는것이 정한이를 더 힘들게 하는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하시며 신중히 고민해보고 답을 달라고하셨습니다. 작년 그리고 올해 정한이가 재발하고 안좋아졌을때마다 다른교수님들은 정한이의 여명에 대해 이야기하고 호스피스를 준비하라고 할때도 그런이야기 듣지말아라, 아직 그럴때 아니다, 작년에도 이겨냈으니 또 이겨낼수있다고 말씀해주셨던 그런 교수님께서 한달도 못버틸거라고 하시니 아 이제 정말 얼마안남은건가,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습니다. 저는 물었습니다. "교수님 정한이 잘 아시잖아요. 정한이였다면 어떤결정을 했을까요?" 정한이는 워낙 적극적으로 모든치료에 임했고 의지가 강하니까 수술하겠다고 했을것같다 하시더라구요. 제 생각도 같았습니다. 수술을 하기로 결정하고나니 여러 의사쌤들이 저를 말렸습니다. "본인 가족이라면 수술안한다." "너무 위험한 수술이다." "여러사람이 말리는데는 이유가 있다." 등등 너무 고민이 되서 정한이 큰아버지, 고모님의 의견도 묻고 매니저님 몇분과도 의견을 나눴습니다. 몇달을 위해서 하기에는 너무 위험부담이 큰수술이고 정한이를 더 힘들게하는것같다는 의견들을 듣고 하지않기로 결정을 하고 교수님께 말씀드리니 "다른선생들이 몰라서하는말이다, 위험하지않은 수술은 없지만 수술 중 잘못될 확률은 높지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정한이 지금 상태면 2주도 못버틸것같다.." 하셔서 눈물을 흘리며 그럼 교수님믿고 하겠다했고 수술동의서에 싸인을 하려는데, 동의서 싸인 받으려던 또다른 의사선생이 또! 저한테 정한이의 MRI영상까지 보여주며 뇌압이 너무 올라가있는 상태라 수술중 뇌출혈 위험이 크고 머리를 여는순간 뇌압으로 뇌중심이 밀려나기라도 한다면 바로 돌아가신다..고 하는겁니다. 지금 수술안하면 2주도 못버틴다는데요..하니 환자분은 수술장에서 무사히 나온다해도 중환자실에서 못나오실거다. 얼굴보며 2주가 낫지 얼굴도 못보는 중환자실에서 몇달 보내다 가시는것이 낫느냐 하더라구요. 저는 생각했습니다. 만약 정한이가 수술방에서 못나오거나 중환자실에서 생을 마감한다면 나는 후회하지않을까? 아니요,저는 너무너무 후회가 될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울면서 "저..못하겠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제 결정을 전해 들으신 교수님께서 또 다시 직접오셔서 자꾸 다른선생들이 무서운 소리하니까 망설이는거 아니냐 하시며 mri영상을 보여주시며 본인이 어떤식으로 수술을 하실것인지 자세히 설명해주시며 저를 안심시켜주셨고 그리고 저한테 하신 마지막 한마디, "정한이였다면 이런상황에서도 수술했을것이란 것을 다른의사들은 몰라도 수정씨랑 나는 알잖아." 하셨어요. 이 한마디에 격하게 공감하는 저는 펑펑 울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최종적으로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정한이 수술을 반대하셨던 다른 선생님들도 "교수님이 저렇게까지 말씀하시니 해봅시다!" 하셨어요.
11시반 경 수술장 들어갔고 12시안에는 시작했을꺼예요. 기본적으로 뇌수술은 4~5시간은 걸린다하셨는데 정한이는 확실히 말할수가 없다시네요. 해봐야안다고.
효자손자홍정한 TV (효자손자 홍정한TV)
정한이가 떠난지 벌써 3주가 되었네요.
제 차 옆좌석은 언제나 정한이가 있었는데 이젠 정한이 대신 정한이의 영정사진만이 있습니다.
어딜가도 똑같아요..
단 한시도 떨어져 있지 않았던 지난날들, 연애를 할 때도 붙어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19년12월 첫 재발로 수술하고부터는 24시간 붙어있었으니.. 이 빈자리를 인정하는데는 시간이 조금 아니 오래..걸릴것 같습니다.
제가 매주 정한이를 보러가고있는데 이번주는 뇌종양 환우모임에서 추모모임으로 함께 정한이를 보고왔습니다.
정한이와 매달 참석했던 뇌종양 환우모임이였어요.
같은 환우다보니 동질감도 있고 매달 오프라인으로도 만나니 서로가 가족처럼 챙기고 응원해주는 분들이예요.
이분들의 부주와 구독자 여러분들의 후원 덕분에 정한이의 새로운 보금자리도 마련할 수 있었던거고요.
구독자 여러분께도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오늘 제가 글을 쓰는건,
정한이를 보러 가고싶어하시는분들이 많으신것 알고있습니다. 마음은 누구나 같으시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것도 알고요.
그래서 마음은 있으시지만 추모관까지 가는 차편이 어려워서 오시기 힘드신분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드리고자 저와 마음동행 매니저님이 함께 동행하려 합니다.
제 차로 이동하는거라 세 분밖에는 더 못 모시지만
날짜는 이번달 26일 토요일이고요
시간은 부산역에서 11시30분에 만나서 출발합니다.
혹시 자차로 바로 오실 분들은 12시반까지 정한이 납골당 신어공원추모관 경남영묘원으로 바로 오시면 됩니다.
가실분은 홍정한씨 카톡으로 톡주세요.
부산역에서 저희와 함께 출발하실 분들은 혹시 인원이 많으시다면 어쩔 수 없이 선착순으로 세분까지 받을께요.
정한이 만나고나서 점심식사도 같이 하려고 합니다.
식당예약을 해야하니 추모관으로 바로 오실분들도 꼭 카톡으로 연락주세요.
감사합니다.
4 years ago (edited) | [YT] | 954
View 128 replies
효자손자홍정한 TV (효자손자 홍정한TV)
정한이가 떠난지 벌써 2주가 되어가는데 감사인사가 너무 늦었습니다.
모든것은 그대로인데 정한이만 없다는게 아직도 믿기지도 않고 인정하고싶지도 않은데
정한이가 없어도 매일 똑같이 흘러가는 시간은 이제 인정해야한다고 말하고있는것만 같아요.
정한이는 잘 보내주고 왔습니다.
함께 슬퍼해주시고 마음 전해주신 덕분에 정한이도 따뜻한 마음안고 갔을것입니다.
정한이 친척분들은 살아생전 정한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있는지 그리고 정한이가 주변사람들에게 얼마나 잘했는지 잘 모르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정한이 마지막 가는길 코시국에도 많은 사람들이 와주시고 입이 닳도록 정한이 칭찬들을 해주시고 교회분들은 발인까지도 진심을 다해 챙겨주셔서 친척분들이 놀라시며 정한이가 짧은생이였지만 80~90세까지 살다가시는분들보다 훨씬 잘살았네,라고 말씀해주셔서 마지막에라도 정한이가 가족들에게 인정받은것 같아 너무 뿌듯하고 좋았습니다.
정한이가 16년 4월 첫 수술을 했으니 횟수로는 7년,
두달 부족한 만 6년을 살다갔네요. 6년이 아니라 60년이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래도 정한이가 마지막까지 힘내주어서, 이렇게나 견뎌주고 제 옆에 조금이라도 더 있어주어서 너무나 감사해요.
정한이 살아있을 땐 제가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생각해서 후회는 없을줄 알았는데 그게 전혀 아니더라구요.
온통 후회투성이..예요.
어느분께서 온맘을 다했기에 후회도 남는거라고 하시던데 정말 후회 투성이예요.
결국 제주도 쿠폰은 써보지도 못했고요..
휠체어타고 병원밖으로 나가서 정한이가 좋아했던 사람들도 만나고 친구들도 만나게 해줄껄, 몇달을 병원병실에만 있었던것이 가장 후회가 되요..
서울대에서는 조금씩이라도 움직이라고 리프트로 매일 태워주시던 휠체어를 정한이가 강직이 너무 심해지면서 몸을 일자로 뻗어버리니 나중에는 휠체어도 못타게 되었었고 그래서 병원을 옮기고도 휠체어 태울 생각을 전혀 못하고있었습니다.
1월에는 정한이가 여전히 인지는 돌아오지않았어도 정한이를 힘들게했던 강직,식은땀,고열,과호흡 등의 신체적인 증상들이 많이 호전되어서 매일 맞던 몰핀을 맞지않아도 될 정도로 좋아졌었고 그래서 휠체어도 탈수 있을 정도가 되었었는데 왜 그때는 휠체어 생각을 못했었는지..
2월이 되어서야 정한이를 침대에서 휠체어로,
휠체어에서 침대로 옮겨줄 이동식 리프트를 알아보다가 정한이같은 중증장애인은 리클라이닝형(침대형) 휠체어도 지원받을 수 있다는것을 알게되었고 앞으로 정한이를 편한 휠체어에 태우고 바깥구경 시켜줄 생각에 기대에 차서 리프트와 휠체어 주문도 다했는데 정한이가 눈감던날, 주문한 휠체어가 나왔다고 갖다준다고 업체에서 전화를 받았어요..
그날은 저녁에 정한이가 좋아했던 몇몇분들과 단체보이스톡도 하기로 약속한 날이였는데 뭐가 그리 급해서 그리도 빨리 가버렸는지,
정한이는 결국 휠체어도 타보지못하고 좋아했던분들 목소리도 듣지못하고 급하게 눈감았습니다.
그래도 정한이는 눈감기 바로 전까지도 모든 심전도 수치가 정상이였고 순식간에 호흡이 0이 되면서 눈을 감았습니다. 고통스럽지 않게 편하게 눈을 감았다는 뜻입니다.
서울대에서 2주 선고받았을때는 2주가 아니라
단 2시간도 보기안쓰러울 정도로 너무너무 고통스러워했던 모습에 하나님께 데려가시려거든 제발 편하게만 있다갈 수있게 해달라고 매일같이 기도드렸었는데 그때의 제 기도를 들어주셨나봅니다.
병원을 옮기고는 제발 일으켜달라 기도드렸는데 이 기도를 들어주셨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이제는 마음껏 걷고 마음껏 뛰고 입으로 맛있는거 먹고 가족들과 이야기 꽃 피우고 있을거란 생각으로, 그 생각 하나로 위안을 삼습니다.
코로나가 정한이 살아생전엔 정한이 지인분,친구들 얼굴도 못보게 만들더니 이놈의 코로나가 정한이 가는길엔 저를 떨어트려놓았습니다.
장례식장앞에 있으면서도 입관도, 발인도 참석하지 못하는 제 마음은 말로 표현조차 힘들었습니다.
특히 입관때는 울산큰아버님께서 혼자 정한이를 보내주셨는데 정한이를 너무 외롭게 보내는것 같아 더욱 마음이 찢어졌습니다.
입관을 함께 하지 못해 큰아버지께 전화를 부탁드려서 스피커폰으로 정한이에게 그동안 너무 고생많았다고,
지금까지 견뎌주고 내옆에 있어줘서 고맙다고,
너와 함께한 하루하루가 행복이였다고,
너무 많이 사랑한다고,
이제 좋은곳가서 할머니도 만나고 엄마아빠도 만나고 하나님도 만나고 거기서는 먹고싶은거 다먹고 하고싶은거 다하면서 그렇게 살으라고.. 얘기해주었습니다.
그날 저녁 어떤분이 장례식장 앞에 차를 세워두고 차안에서 울고만 있던 저에게 쪽지를 하나 전해주셨습니다.
(그때받은 쪽지는 사진으로 올렸습니다.)
쪽지를 보고 정한이가 가는길 마지막으로 제 목소리를 들었을거라 생각하니 정말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글로나마 장례식장 그 직원분께 감사인사드립니다.
그리고 입관은 보지못했지만 정한이가 눈 감는 순간을 함께 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저는 정한이를 통해 배운게 정말 많아요.
정한이를 가장 가까이서 보면서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이 나라면 이렇게 못할것같다는 생각이였습니다.
이렇게 긍정적일 수 있을까? 하루아침에 말이 안나오게 된것이 정말 답답할만도 한데 정한이는 잠시 우울해 했을 뿐 금방 털고일어났고, 평생 쓰던 오른손이 움직여지지않으니 정말 답답했을텐데 금방 왼손을 쓰며 이겨내는 모습을 보여주었어요.
매번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났어요.
정한이 덕분에 건강한 사람들은 모르는 평범한 일상이 행복이라는것을 알았고 그래서 정한이와의 모든 순간이 행복했습니다.
정말 자주 이야기했어요. 싸우는 연인들을 볼 때면, 우리는 먹지못하는 음식을 먹는 사람들을 볼 때면,
"저 사람들은 저게 행복이란것도 모르겠지? 진짜 일상이 행복이고 살아있는게 행복인데. 그치?"
"응!"
"우리 너무 행복하다! 그치?"
"응!^^"
정한이와 정말 자주 나누던 대화였어요. "우린 정말 행복하다!^^"
저는 정한이 덕분에 보통 사람들은 이 나이에 하지못할 경험도 미리 했으니 나중에 혹여 우리 부모님 연로하셔서 간호할 일이 생기면 누구보다 편하게 잘 해드릴 수도 있을것같아요^^
정한이는 암과 싸우며 호스피스를 준비하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안좋았던 적도 있었고 세번, 네번의 재발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씩씩하게 이겨내고 참 열심히 해주었어요.
하지만 인명은 재천이라던가요 작년 4월 경미한 교통사고 이후 정한이가 2주간 경련을 했는데 암이 없던 우측으로 암이 확 커져있었습니다.
이것이 시작이였어요.
항암하며 잠시 몇달 좋아지기도 했지만 10월부터 정한이는 말하지도 먹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정한이는 본인의 힘으로 앉아있을 수 있었던 마지막 순간까지도 팔재활하는 모습을 보여줄 정도로 의지를 놓지않았던것 같습니다.
눈 감기 바로 전에는.. 인지도 없던 정한이가 눈물을 주르륵 흘렸는데.. 정한이의 평소 살고자했던, 삶에 대한 강했던 의지를 생각해보면 그 눈물의 의미가 눈감기싫다.가기 싫다, 그런 마음이였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어서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지금도 무슨 의미였을까, 그 눈물의 의미가 너무 궁금해요.
저한테 미안한 마음으로 흘린 눈물이였을거다,라고도 말씀들 하시는데 정말 차라리 그런 마음이였다면 좋았겠단 생각이 들어요. 가기싫어 흘린 눈물이라면 너무 마음 아프니까요..
너무나도 아까운 청년이지만 본인의 바람대로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쳤고 아버지의 유언대로 훌륭한 사람으로 살다 갔기에 너 정말정말 잘 살았다 얘기해주고 싶어요.
정한이가 6년간 암과 싸우며 열심히도 살았던 그 시간을, 정한이 옆에서 힘이 되어주고자했던 저의 4년의 시간을 이 짧은글로 다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앞으로도 정한이를 추억하고 기억하며 조금씩 써내려갈 생각입니다.
정한이는 김해 경남영묘원 신어공원추모관
2층 가야관 J-204에 안치했습니다.
정한이가 자식이 있는것도 아니고 저도 제 삶 살기바라시는 마음에서 친척분들 뜻으로 정한이를 안치하지않고 한줌 재로 뿌려질뻔한 상황도 있었지만 정한이 마지막 가는길에 구독자분들과 정한이와 같은 뇌종양환우 모임에서 보내주신 따뜻한 마음이 모여 좋은곳에 안치할 수 있었습니다.
혼자 자라서 외로움을 정말 많이 탔던 정한이예요.
홍팸여러분, 정한이 구독자여러분들께서 정한이 한번씩 찾아가 주시면 정한이가 덜 외로울것 같아요.
그 동안 정한이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홍정한 잊지말고 기억해주세요.
4 years ago (edited) | [YT] | 955
View 297 replies
효자손자홍정한 TV (효자손자 홍정한TV)
가슴아픈 부고문자 올립니다.
정말 올리고싶지않은 글입니다..
samga.co.kr/obituary.do?bn=241665
4 years ago (edited) | [YT] | 383
View 117 replies
효자손자홍정한 TV (효자손자 홍정한TV)
정한이 여자친구 수정입니다.
이번에 병원에서 코로나 확진자들이 많이 나와 층간격리가 되었지만 같은층내에서는 확진자와 비확진자들이 같이 섞여있다보니 물뜨러가는일 외에는 병실에서 나가지도않고 조심했는데도 코로나 양성확진으로 정한이를 외롭게 혼자 부산까지 내려보냈습니다.
불행중 다행으로 간호사선생님께서 보건소에 문의해서 자차로 이동하고 자가격리할 곳이 있으면 자가격리 주소지를 신고하고 이동해도된다고 하셔서 저는 지금 남천장례식장 앞에 와있습니다.
장례식장 앞까지 와서 들어가보지도 못하고 저 안에서 춥고 외롭게 있을 정한이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집니다.
저는 정한이 입관도 화장하는것도 보지못합니다.
어떻게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이 생길 수가 있는건지..
거두절미하고 제가 지금 글을 올리는 이유는 여러분들께 도움을 요청하려고합니다.
정한이 아버지께서 영락공원에 계시기때문에 정한이도 영락공원에 안치하려고했는데 자리가 없다고하네요.
화장도 내일은 부산에서는 화장할 곳도 다 꽉차있어 울산까지 가서 화장을 합니다.
큰아버지는 거기서 화장하고 부산까지 다시 오기는 힘드니까 울산에 자리가 있으면 울산에 안치를 하고 울산에도 자리가 없으면 어디 뿌려주던가하자는 식으로 말씀을 하셔서 제가 펄쩍뛰니 어차피 찾아올 사람도 없지않느냐(지금이야 친구도오고 누구도오고하겠지만 나중에는 자식도 없는데 누가 와보고 관리하겠냐,너도 젊으니 이제 니인생 살아야지 그런 의미셨을꺼예요)하셔서 "제가 가죠! 제가 할꺼예요! 그리고 정한이가 부산에서 나고 자랐는데, 부산에 안치해야 친구들도 한명이라도 더 찾아오죠. 제가 어떻게든 부산쪽으로 자리 알아볼테니까 기다리세요!"
큰소리는 쳤지만 부산어디가 괜찮은지도 모르고 마음이 급한 상황입니다.
부산에 덮개가 대리석으로 되어있는 안치함말고 유리로 되어있는 개방형 안치함이 있는곳으로 아시는곳이 있으시다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얼른 정한이 안치할 곳을 찾아야 부고문자를 돌리는데 마음만 급하네요ㅠ
상황이 시급한 만큼 자리가 있는지도 알아봐주시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한분이 한곳씩만 알아보셔도 저한테는 큰 도움이 될테니까요.
댓글 부탁드려요.
여러분 감사드려요.
일단 유리로 되어있는 개방형안치함이 있는곳이 부산내에는 없다네요.
가장 가까운 김해에 경남영묘원 신어공원추모관 자리있다해서 신어공원으로 결정했어요.
여러분의 마음이 모아져 금방 찾았네요.
4 years ago (edited) | [YT] | 703
View 158 replies
효자손자홍정한 TV (효자손자 홍정한TV)
갑작스런 비보에 가슴 쓸어내릴 구독자님들
마음동행입니다.
수정씨가 경황이 없을것 같아 제가 몇자 올립니다.
누구보다 이쁘고 효심가득하고 우리들을 웃게 해 주고 삶의 의지가 강했던 정한씨를 하늘에서 쓰임이 있어 이렇게 빨리 데려가 버렸네요.
정한씨 마지막 가는 길에 마음 보내주실 분들은 아래 계좌로 보내주심 감사하겠습니다.
우리은행 291-278981-02001 이수정
마음동행 올림
4 years ago | [YT] | 437
View 52 replies
효자손자홍정한 TV (효자손자 홍정한TV)
안녕하세요. 정한이 여자친구 수정입니다.
정한이가 어제 동공이 열리고 동공반사가 없어서 구독자분들도 마음의 준비를 하실 수 있도록 알려드리는것이 예의일것 같아서 글을 올리려고했는데 너무도 빨리 조금전.. 정한이가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너무도 기가 막히게 저는 오늘 코로나 양성판정이 나와서 정한이 마지막 가는길 함께 하지도 못합니다.
정한이는 부산에 남천장례식장으로 갈꺼고 부산으로 가는 구급차를 기다리는 동안 급하게 글 올립니다.
장례식 일정이 나오면 다시 글 올릴께요.
지금 경황이 없어서 짧게 글 올리는거 이해부탁드립니다.
4 years ago | [YT] | 614
View 296 replies
효자손자홍정한 TV (효자손자 홍정한TV)
정한이 지금 수술중입니다.
기도해주세요!
2년전 19년12월 정한이가 처음 재발해서 수술하고 나왔을때 정한이의 모습을 보고는 다시는 수술하지말자고 했었는데 이번에는 수술중 bed death할 수도 있는 위험한 수술이라고 들은터라 기도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정한이 현재 상태는,
연하장애가 와서 콧줄로 식사하면서 몸무게가 50kg까지 빠졌고,
말을 전혀 하지못하고, 인지도 거의 되지않고,
시상하부까지 문제가 생겨 체온조절이 안되서 하루종일 고열에 시달리고,
숨쉬는것이 힘들어서 기도절개를 했는데도 근본적으로 기도의 문제가 아니라 머리의 문제이기 때문에 숨쉬는게 여전히 힘들고,
뇌압때문에 강직으로 온몸에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하루종일 힘이들어가서 땀을 비오듯 쏟아내며 너무너무 힘들어합니다.
수술을 결정하는 며칠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몇번이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정말 생지옥이란 말이 딱 어울리는 며칠이였습니다.
지난달, 정한이가 더 이상의 항암은 원치않아서 서울대에 11월1일로 감마나이프를 예약해놓고 기다리던 중 연하장애로 밥도 약도 먹지못해서 기력도 떨어지고 경련까지와서 응급실을 갔습니다.
콧줄을 꼈고 입원을 했고 감마나이프를 기다리고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가 다르게 컨디션이 떨어지더니 위에서 언급한 상태가 되어버렸고 바로 MRI찍고 영상을 보고온 담당교수님께서 현재상태로는 감마를 할 수 없다, 감마를 하면 부종이 생기는데 암이 너무 커져서 그 부종이 들어갈 공간조차없다, 지금 할수있는건 수술밖에 없다고하셨습니다.
그러나 수술도 암제거가 목적이 아니라 암을 조금 떼어내서 뇌압을 낮춰주어 뇌압때문에 생기는 고열, 호흡곤란, 강직 등 정한이를 하루종일 힘들게하는 증상들을 완화시키는것이고
암은 이미 너무 커져있어서 다 때내는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신경을 건들지않는선에서 최대한 떼어내서 시간을 벌어주는 정도다.
그 시간이란것도 교모세포종이란 암이 워낙 성장이 빠른 암종이라 단 몇달이면 걷어낸만큼 다시 자랄꺼다. 최악에는 2주~4주만에도 다시 자랄수있다.
하지만 수술안하면 지금상태로는 정한이가 한달도 못버틸거다. 정한이가 스스로 정리할 시간을 만들어주고싶다하지 않았나, 수술하면 응급실 들어왔을때 정도는 회복할수있지않을까 생각한다고 하셨습니다.
정한이가 힘들어지면서 교수님께 정한이가 이렇게 갑자기 말을 못하게되지만 안았어도 더이상의 의미없는 병원치료안하고 정한이가 스스로 정리할 수있게 둘이 시간가지며 남은시간 보냈을거다, 정한이가 분명 하고싶은 말들이 있을텐데..라고 울면서 얘기한적이 있었는데 그 말을 기억하고 계시더라구요.
다만 워낙 큰수술이라 단몇달을 위해 수술을 하는것이 정한이를 더 힘들게 하는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하시며 신중히 고민해보고 답을 달라고하셨습니다.
작년 그리고 올해 정한이가 재발하고 안좋아졌을때마다 다른교수님들은 정한이의 여명에 대해 이야기하고 호스피스를 준비하라고 할때도 그런이야기 듣지말아라, 아직 그럴때 아니다, 작년에도 이겨냈으니 또 이겨낼수있다고 말씀해주셨던 그런 교수님께서 한달도 못버틸거라고 하시니 아 이제 정말 얼마안남은건가,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습니다.
저는 물었습니다.
"교수님 정한이 잘 아시잖아요. 정한이였다면 어떤결정을 했을까요?"
정한이는 워낙 적극적으로 모든치료에 임했고 의지가 강하니까 수술하겠다고 했을것같다 하시더라구요.
제 생각도 같았습니다.
수술을 하기로 결정하고나니 여러 의사쌤들이 저를 말렸습니다.
"본인 가족이라면 수술안한다."
"너무 위험한 수술이다."
"여러사람이 말리는데는 이유가 있다." 등등
너무 고민이 되서 정한이 큰아버지, 고모님의 의견도 묻고 매니저님 몇분과도 의견을 나눴습니다.
몇달을 위해서 하기에는 너무 위험부담이 큰수술이고 정한이를 더 힘들게하는것같다는 의견들을 듣고 하지않기로 결정을 하고 교수님께 말씀드리니 "다른선생들이 몰라서하는말이다, 위험하지않은 수술은 없지만 수술 중 잘못될 확률은 높지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정한이 지금 상태면 2주도 못버틸것같다.." 하셔서 눈물을 흘리며 그럼 교수님믿고 하겠다했고 수술동의서에 싸인을 하려는데,
동의서 싸인 받으려던 또다른 의사선생이 또! 저한테 정한이의 MRI영상까지 보여주며 뇌압이 너무 올라가있는 상태라 수술중 뇌출혈 위험이 크고 머리를 여는순간 뇌압으로 뇌중심이 밀려나기라도 한다면 바로 돌아가신다..고 하는겁니다.
지금 수술안하면 2주도 못버틴다는데요..하니 환자분은 수술장에서 무사히 나온다해도 중환자실에서 못나오실거다. 얼굴보며 2주가 낫지 얼굴도 못보는 중환자실에서 몇달 보내다 가시는것이 낫느냐 하더라구요.
저는 생각했습니다.
만약 정한이가 수술방에서 못나오거나 중환자실에서 생을 마감한다면 나는 후회하지않을까?
아니요,저는 너무너무 후회가 될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울면서 "저..못하겠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제 결정을 전해 들으신 교수님께서 또 다시 직접오셔서 자꾸 다른선생들이 무서운 소리하니까 망설이는거 아니냐 하시며 mri영상을 보여주시며 본인이 어떤식으로 수술을 하실것인지 자세히 설명해주시며 저를 안심시켜주셨고
그리고 저한테 하신 마지막 한마디,
"정한이였다면 이런상황에서도 수술했을것이란 것을 다른의사들은 몰라도 수정씨랑 나는 알잖아." 하셨어요.
이 한마디에 격하게 공감하는 저는 펑펑 울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최종적으로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정한이 수술을 반대하셨던 다른 선생님들도 "교수님이 저렇게까지 말씀하시니 해봅시다!" 하셨어요.
11시반 경 수술장 들어갔고 12시안에는 시작했을꺼예요.
기본적으로 뇌수술은 4~5시간은 걸린다하셨는데 정한이는 확실히 말할수가 없다시네요. 해봐야안다고.
정한이 기도 많이많이 해주세요.
제발 제발 힘내달라고..
4 years ago (edited) | [YT] | 1,170
View 421 replies
효자손자홍정한 TV (효자손자 홍정한TV)
오늘은 고등어무조림!!
싹 다 먹었어요!
홍팸여러분께 죄송한 말씀드립니다.
어제 mri결과보고왔는데 다시 재발했다네요..
좋은소식 전해드리지못해 죄송합니다.
화요일에 다시 암센터가서 앞으로의 치료계획 상담예정입니다.
또 소식 올릴께요.
여러분 건강하세요!❤
4 years ago (edited) | [YT] | 372
View 59 replies
효자손자홍정한 TV (효자손자 홍정한TV)
!화이팅! 새로운 시작인만큼, 저 찬란한 노을만큼 내치료도 잘됐으면 좋겠다!!
홍팸 화이팅!!❤
4 years ago (edited) | [YT] | 402
View 37 replies
효자손자홍정한 TV (효자손자 홍정한TV)
3주정도 전부터 두통과 잔경련이 계속있었고 며칠전부터는 다리에 힘이 빠져서 이달 말일로 예정되어있던 MRI를 앞당겨서 어제 찍고왔습니다.
결과는 금요일에 나옵니다.
기도해주세요.
이번주에 5차 항암이 시작되었는데 수정이가 녹두가 독소배출에 좋다고 녹두삼계죽 끓여줘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환절기 감기 조심하세요.
금요일 결과보러 병원가는날 방송할수있으면 방송하려고 합니다. 금요일에 뵈요.
4 years ago | [YT] | 454
View 46 replies
Load more